송계8경
월악산(1,094m)은 한수면 송계리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공원입니다.
월악산은 제천10경의 제3경을 자리할 만큼 풍광이 뛰어난 국내 5대 명산이기도 합니다.
인근 선조들은 이 안에 있는 아름다운 송계리의 계곡들을 "송계8경"이라 칭하며 그 풍광의 아름다움을 극찬했습니다.
송계8경은 팔랑소(八娘沼), 와룡대(臥龍臺), 망폭대(望瀑臺), 수경대(水鏡臺), 학소대(鶴巢臺), 자연대(自然臺), 월광폭포(月光瀑布), 월악영봉(月岳靈峰)을 말합니다.
영봉을 위시해 근엄하게 펼쳐진 월악산 자락에 송계8경의 계곡들이 그 핏줄처럼 아름다움을 배가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계곡물이 얼음처럼 차가워 무더운 여름철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많은 피서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며, 인근 월악산 영봉과 덕주사가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관광지 입니다.
주소 : 충북 제천시 한수면 미륵송계로 1360-1
문의 : 043-653-3250
(국립공원관리공단 월악산사무소)
'팔랑'은 바람을 뜻하는 말로, 옛날 하늘나라 8공주가 바람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신라8공주가 국태민안을 기도하며 제를 올렸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팔랑소는 폭포로 이뤄진 호수인 폭호(瀑湖)로 맑고 깨끗하지만 많이 깊지는 않습니다. 넓은 반석이 평탄하게 펼쳐진 형태로, 계곡 물줄기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감돌아 흘러 휴식하기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용이 누워있다가 승천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일명 용초(龍礁)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와룡대는 폭포로 이뤄진 호수인 폭호(瀑湖)로 물이 맑고 깨끗하지만 깊어서 용이 누워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기암 정상에서 내려다본 송계8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하여 “폭포(8경)를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유래된 지명, 망폭대. 망폭대는 절리(암석 등이 외력(풍화, 지각변동 등)에 의해 갈라진 틈)로 그 바위 위에는 적반송 한 그루가 수백년 풍상을 견뎌내고 의연하게 서있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나무를 속리산 정2품송에 이어 '월악산 정3품송' 이라 칭한다고 합니다.
수경대는 주변에 흐르는 물이 거울과 같이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덕주사 마애불상으로 가는 길을 연결해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암벽을 병풍으로, 그 아래 폭포와 폭호가 이루어져 물이 맑고 깨끗합니다. 한편 고려시대 몽고군이 쳐들어오자 갑자기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일었고, 이에 놀란 몽고군이 월악대왕의 신령스러운 도움이 있다 하여 회군하였다는 일화도 함께 전해지는 장소입니다.
학의 둥지라는 뜻으로, 옛날 한 쌍의 학이 월악산을 오가며 정답게 살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바위와 소나무와 한 쌍의 학이 살았다는 학소대. 학소대는 덕주사 일주문으로 들어서기 전 보이는 단애(절벽)으로 층층의 바위와 주변의 작은 소나무가 어우러져 경치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다투었다가도 금방 사랑을 되찾을 수 있어 한 쌍의 학도 영생해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도, 숲도, 나무도 모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여 지어졌다는 자연대. 자연대는 충청북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릴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답습니다. 도로변에 위치하면서도 길에서 보이지 않도록 무성한 숲에 가려진 제천의 아마존(!?)입니다. 자연대 가까운 곳에는 서당계곡이 있어 이 또한 좋은 경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3단 폭포로 암벽에 흐르는 두개의 물줄기는 30m에 이릅니다. 갈수기에는 수량이 적어 폭포의 진면목이 다 드러나지 않지만, 우기(비온 뒤)때는 30m에 이르는 3단 폭포의 위용이 근사합니다. 폭포수는 비류낙하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담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따로 고이지 않습니다.) 월광폭포는 신라 승려 도증이 창건하여 조선시대까지 있었다고 전해지는 월광사가 있던 자리로, 임진왜란 때 불타 터만 남은 월광사지의 앞글자를 본따 월광폭포로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월광폭포 근처 월광사지 터에서는 돌거북과 월랑선사탑비(보물제360호) 등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월악산의 신령스러운 대장 월악 영봉의 별칭은 국사봉(國師峰)으로 국가를 지키는 봉우리라는 뜻입니다. 과거 한반도 주 봉우리가 영봉인 곳은 월악산과 백두산이 유일한데, 앞서 소개했듯 수경대에서 몽골군을 신령한 힘으로 내쫓은 과거의 기록으로 신성시 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고 합니다. 여하튼 이름과 별칭을 통해, 과거 우리 선조들이 월악산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 지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월악영봉은 해발 1,097m로 150m의 화강암 두개가 돌충해 있는 기암단애입니다. 영봉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송계계곡, 서쪽에는 용하계곡이 합쳐진 광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월악산은 그 중심부에서 내려다보면 인근 3개 시군이 가시권역에 있으며, 북쪽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어 한강으로 진출할 수 있는 중심 길목에 해당하여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시 되었습니다. 이에 고대부터 좌우를 차단하는 방어성을 수축하였고(덕주산성), 이 중 가장 높은 월악영봉은 당연히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 역할을 하였습니다.
<출처 제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