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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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뫼골 유래와 광산발동기, 동산분교장

골뫼골 유래와 광산발동기, 동산분교장

이곳 골뫼는 사방으로 산이 둘러쌓인 천연적인 요새지형으로 외부의 접근이 어려워 6.25 전쟁때도 피난가지 않고 오히려 외부에서 피난을 올 만큼 편안함과 포근함을 주는 마을이다.

골뫼라는 명칭은 순수 우리말로 동녘동 산뫼자로 예전에는 동산마을이라고 불리었다.

해가 일찍뜨고 늦게져 일조량이 많고 기름진 비옥토가 많은 이곳은 농사가 잘되는 풍요로운 마을이다.

한편 송계리는 일제강점기때 동광, 형석, 중석 광산이 활성화되던 곳이었으며 1950년 6.25 전쟁으로 잠시 휴광되었으나 다시 재개되었다.

지금 마을에 남아있는 광산발동기 역시 당시 실제 사용되었던 것으로 당시 구려골에서 화물차(제무시)로 용마봉 중턱 형석 광산으로 운반, 설치 되었으며 이만엽씨 등 다수의 광부들이 사용하였다.

해방이후 송계리는 국수골, 접골, 꼬부랑재, 칙목이, 고름재 등 5개 골짝이에 주민이 분포되어 살았으며, 주민들은 대부분 광산과 농업에 종사하면서 약 70여 가구, 200여명이 살았던 제법 큰 동네였다.

이 즈음 하늘아래 첫 동네 오지마을인 송계리 주민들은 자녀들의 교육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는데 마침 송계지역에 근무하던 충북대 학술림의 김홍은 선생께서 이를 안타깝게 여겨 칙목이 골에 가설천막을 설치하고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이를 계기로 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학교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위원장에 유학종, 위원으로 정기선, 석근태, 유관수, 석길상 등 다수가 동참하여 부지를 희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67년 제원교육청의 인가를 받아 송계초등학교 동산분교장으로 명하게되었다.

동산분교장에는 초등 1,2,3,4학년들이 수업을, 고학년인 5,6학년은 이곳에서 10여KM떨어진 송계초등학교를 열둘 개울을 건너며 어렵고 힘들게 다녀야 했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속에서 광산개발 중단과 이농현상으로 인해 학생수가 급감하면서 1995년 동산분교장은 폐교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2011년 국립공원공단에서 추진한 오지마을 소득사업에 송계4리가 ‘골뫼골 명품마을’로 선정되면서 월악산 국립공원에서 학교부지를 임대하여 지금의 기반시설을 갖추었으며 2013년 12월 23일 농촌체험 휴양마을로 지정되었다.

현재 골뫼골 체험휴양마을은 덕주골, 사쟁이, 골뫼가 합쳐진 송계4리 영농조합 회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도움 주신분 유영옥 노인회분회장님

도움 주신분 신경숙님

발동기기증 석승희님

옮긴글 정종호 마을이장